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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100803] 속도보다는 방향에 초점을 맞춘 삶" 연기

작성일
2010.08.04

"속도보다는 방향에 초점을 맞춘 삶" 연기---연극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 의 배우 조준형

 
 
21세기도 바쁘게 지나가 어느덧 판타지 3D 영화가 최다 관객 기록을 갈아 치우는 2010년. 나는 대학로의 작은 극장을 찾게 되었다.


연극은 영화보다는 관심을 갖지 않는 한 잘 알지 못하고 접하기 수고스러운 게 사실인데 기회가 좋았다. 이런저런 기대를 안고 극장으로 향했다. 어라, 입구와 출구가 따로 있는 극장이 아니다. 스크린도 아니다.


연기 소품들과 세트는 내 앞에 펼쳐져 있다. 낯선 광경에 기대가 더욱 커져 간다. 이 작은 소극장에선 배우의 숨소리마저도 내게 들릴 것만 같았다. 영화와는 달리 정시에 연극은 시작됐고, 나는 잠시 그 세탁소 안으로 들어가 본다.


희한한 신음소리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공연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이 시작되었다. 정겨운 부부가 운영하는 작은 세탁소 안에서 나에겐 익숙지 않은 치이익~ 스팀다리미와 두드려야 잘나오는 TV, 그리고 소시민들의 삶이 고이고이 배어 있는 수많은 옷들.


이 낯선 풍경이 어쩌면 스피드 빨래방에 익숙해져 있는 나의 현대적인 마음씨를 조금 누그러뜨린 게 아닌가 싶다. 엄친아의 유학 이야기로 부모님과 다투는 사춘기 아들의 투덜대는 저 입모양이 왠지 모르게 공감이 가고, 그 작은 투덜거림이 세탁소 주인 강태국의 마음을 더욱 서글퍼지게 하는 것을 알기에 뇌리에 스쳐 지나가는 부모님 얼굴과 함께 갑자기 내 눈시울마저 붉어졌다.


허허허 소탈한 웃음으로 손님들을 밝게 맞이하는 강태국은 연예인이 되겠다는 단역배우 단골 젊은이를 위해 몰래 예쁜 옷을 빌려 줄 뿐만 아니라 40년 전 어머니의 옷을 맡기고는 이제야 찾으러 온 불효자와 함께 울어주는 그야말로 청정 그 자체 같았다.


각박한 삶에 힘들고 지쳐서 누군가가 맡긴 옷 안에든 보물을 챙기기 위해 너도 나도 습격한 오아시스 세탁소에서 황금으로 때가 묻은 사람들의 마음을 세탁기로 날려주는 그 마지막 장면은 아직도 내 눈앞에 생생하다.


이 시대의 때 묻은 수많은 현대인의 마음도 깨끗하게 씻겨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을 보고 나와 마로니에 공원을 걷다보니 나 역시도 각박하고 숨 막히는 생활을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돈, 명예가 무엇이기에 나를 이렇게 지치게 하는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앞뒤 꽉 막혀 있는 나에게 강태국을 연기하는 배우 조준형은 무언가 해답을 제시해 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삭막한 이 어마어마한 사회와 직접 맞닿지 않고 작은 소극장에서 그만의 가치관을 갖고 삶을 펼쳐나갈 것 같았다.


그래서 나의 이런 저런 호기심과 연극에 대한 감동을 이어가고픈 마음에 배우 조준형씨를 직접 만나보았다. 그는 ‘사람들은 나를 잘 모르지만, 오래도록 무대를 지키고 있는 배우 조준형’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인터뷰 중 배우 조준형 씨와 기자



- 이 연극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과는 언제 처음 만났나.
"원래 내가 하기로 했던 작품이 아니라 함께 극단에 있던 친구가 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유명을 달리했다고나 할까. 암으로 세상을 떠나서 우연하게 바톤터치를 했다.


작가선생님이 나를 염두하고 쓰신 글은 아니었는데, 이 무대가 나에게는 운명같이 다가왔다. 2003년 5월 예술의 전당에서 처음 친구대신 얼떨결에 이 연극을 만나 지금까지 무대를 지키게 되었다."


- 연극을 처음 시작했을 때와 지금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때는 공연한 지가 만 7년 정도 된 40대 초반이었고 지금은 어느덧 중후반이다. 처음에는 나이와 역할이 주는 중압감 때문에 ‘강태국과 하나가 될 수 있을까’ 의구심을 갖고 두려워했는데 지금은 그가 나에게 자리 잡아 강태국이 된 것 같다."


- 극중 강태국은 원리원칙을 반드시 지키는 이미지이다. 주인공 강태국을 보면 어떠한 생각이 드는가.

"내가 그에게 품는 생각은 두 가지이다. 먼저 나는 거의 절대적인 후원자이다. 반면 연민, 안타까운 시선도 동시에 갖는다.


강태국이라는 역할은 거친 파도 속 무인도와 같이 처절하게 세상과 싸우는 외로운 사나이이다. 원칙을 지키는 것은 답답해 보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보이지 않는 울타리와도 같다. 사회를 지탱하는 마지막 울타리이기 때문에 이것이 무너지면 사회, 인간도 모두 무너지게 된다.


법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는 보이지 않은 수많은 원칙이 있는데 나는 그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점에서 강태국과 같다.


그러나 그 원칙은 세상과 타협해야 하지 말아야 할 부분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에 강태국은 외로운 사람이다. 그를 지지하지만 안타깝기만 하다.


내게 자식이 있다면 그런 아들로 키우고 싶지는 않다."


- 강태국은 유난히 웃는 장면이 많은데 너무 매력적이다.
"웃는 연기를 할 때는 호흡도 어렵고 에너지도 많이 필요하다. 강태국을 연기하는 처음에는 웃음을 많이 쓰지 않았는데 언젠가 이 웃음이 관객과 상대 배우에게 다가가는 친근감, 사랑 이런 것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어와 웃음은 인간만이 갖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인간적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웃음이 가장 인간적인 것 같다."


- 뮤지컬, 개그 쇼 등도 매우 많이 하는데 그것에 밀려서 정극이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이 장기공연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은.
"가장 중요한 것은 텍스트다. 정말 희곡이 잘 만들어졌다.


극작가가 글을 가장 잘 썼다는 것이다. 작품이 쉽고 재미있는데다가 감동, 교훈까지 갖추었다. 주제를 쉽게 전달하기란 어려운 것인데 그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어린 아이부터 70~80세까지 관객층이 넓다는 점도 칭찬받아 마땅하다. 이 연극의 전용극장은 맨 처음 당구장에서 시작했는데 그 곳은 마음껏 쓸 수 있는 무대였다. 작품만 좋으면 언제나 관객이 올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공연했다.
배우들은 개개인의 욕심보다는 많이 양보했고 오로지 작품에만 신경 썼다."


- 이 작품을 통해서 전달하고 싶은 의미가 있다면.
"사람은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 속도로 사는 사람과 방향으로 사는 사람으로 나뉜다.
대부분 얼 만큼 빨리 달리느냐 초점을 맞춘다. 금메달을 몇 개를 따는지에 집중 받는 세상, 그것이 속도로 사는 삶이다. 속도에 적응하지 못하고 은메달을 목에 건채 고개 숙이고 살아야 하는 삶은 금메달을 동경하지만 지치기만 한다.
속도 전쟁은 방향과는 관련 없는 것이다. 강태국은 느리게 살고 있으나 방향은 정확하다. 그것이 이 작품이 전달하는 주제가 이것이 아닐까한다. 방향이라는 것은 내가 가고 있는 방향이 옳은 것인가를 되돌아보고. 속도라는 것은 그 다음 문제이다.


적절하게 조절해야한다. 방향을 올바로 가고 있느냐가 주제가 아닐까."


- 올해부터 중학교 교과서에 이 작품이 현대 창작희곡 중 첫 번째로 실린다고 하던데, 처음 접하는 청소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없나.
"연극보다는 뮤지컬이 지금은 더 널리 알려졌다. 연극이라는 것 자체가 많이 감춰지게 된 장르고 이제는 식상한 느낌이다.


또 연극배우는 되도록 하지 않아야 할, 모두가 기피하는 3D직종이고 다들 엔터테인먼트회사로 가서 영화배우나 가수가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기초과학이 있어야 응용과학이 있듯이 연극은 어떻게 보면 사람이 태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울고 웃다 손장난 하는, 인간이 처음 경험하는 사회공부라고 생각한다. 발표하고 듣고 쓰는 국어공부이자 사회공부이고 도덕공부까지 되는 이러한 연극을 알면 철학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이 생명수처럼 지켜져야 하고 없어질 수 없는 그런 장르이고 굉장히 매력이 있는 것이다.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의 무대




조금 아는 사람들은 연극이 어렵다고 한다. 옛날엔 이걸 가지고 사회운동도 많이 했었다. 공산주의에서 연극이 정치와 동반했던 시절도 있다.


또 연극은 솔직히 좀 불편하다. 영화는 집에서 비디오 보다가 리모컨을 들고 화장실도 다녀올 수 있고 팝콘도 먹을 수 있지만 연극은 화장실도 못가고 객석도 좁고 불편하다. 왜냐하면 졸지 않게 하기 위해서 불편하게. 딱딱하게. 불편함을 배웠으면 좋겠다.


사회적응을 위해 해병대를 가듯이 이 불편함에서도 연극을 채워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여기 오면 껌도 음식물도 물도 못 먹는다. 화장실도 못 간다.


하지만 한 가지 적극적인 것은 연극에 직접 참여하는 것. 무대와 관객과 배우 세 사람이 만드는 것. 내가 이 오아시스를 만들어 본다는 것. 이러한 의미에서 보람을 느낄 수 있을 듯하다."


- 매월 첫째 주 수요일은 ‘오아시스 샘물데이’로 그 날의 수익금은 캄보디아에 식수지원사업을 하는데 쓰인다고 들었다.
"오아시스라는 말처럼 사막에서 목마른 자에게 물을 줄 수 있는 쉼터를 직접 제공하려는 취지다.
작품의 주제가 캄보디아에 샘물을 공급하고 있는 월드쉐어의 목표가 같기에 함께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 생명수가 수백, 수천 명을 살리는 세계 차원의 것은 아닐지라도 우리 작품이 세계적인 것이 되려면 이러한 사업에 작은 힘이라도 보태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세탁소가 있는 한 이 사업은 계속될 것이다. 내가 한 끼 굶더라도 지구촌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에 희망을 느끼고 싶다."


-권순지/인터넷 경향신문 대학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