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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경향신문101222] [2010 지구촌의 그늘](5) ‘재앙의 땅’ 아이티 아이들의 희망가

작성일
2010.12.29

[2010 지구촌의 그늘](5) ‘재앙의 땅’ 아이티 아이들의 희망가


ㆍ절망을 뚫고 ‘꿈’이 싹튼다


폐허에서도 동심은 자란다. 하지만 미래의 튼실한 꿈으로 키워내기 위해서는 아이들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아이티 강진 발생 반년이 되는 지난 7월12일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무너진 마을에서 천막을 치고 살아가는 한 소녀가 힘겹게 식수를 나르고 있다. 포르토프랭스 | AP연합뉴스

“지구가 멸망하는 줄 알았어요.”


아홉살 아이티 소녀 앙드리즈에게 ‘2010년 1월12일’은 그렇게 느껴졌다. 어린 사촌 두 명과 함께 집안에 있었던 앙드리즈는 집이 흔들리자 ‘우리 모두가 죽을 것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무조건 집 뒤뜰로 사촌들을 데리고 뛰었다. 지난 1월21일 국제 아동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 소속 구호요원 콜린 크롤리는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한 난민캠프에서 앙드리즈를 만났다. 그리고 앙드리즈와 인터뷰한 영상을 동영상 공유 사이트인 유튜브에 올렸다.


앙드리즈는 “눈앞에서 벽이 바닥으로 무너져내렸고, 바로 옆집이 ‘우르르’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고 말하며 카메라를 응시했다. 흔들리는 눈빛의 앙드리즈는 “옆집에는 어린 아기 두 명이 있었는데, 그 집이 무너지면서 죽었다”며 건물들이 무너지는 장면을 그리듯 손을 아래로 계속 내리쳤다.


앙드리즈는 어머니와 함께 카르푸르 포이유 근처에 설치된 임시 난민캠프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인터뷰에 응한 날은 다행히 식수와 가정용품 등 구호물품이 도착한 날이었다. 구호품을 받기 위해 줄지어 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앙드리즈의 얼굴과 번갈아 비쳐졌다.


앙드리즈는 “집 밖에서 잠을 자본 적이 없어서인지 여기서 지내는 게 불편하다”며 “오늘은 구호품이 와서 사람들이 모두 ‘이제는 살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어리광을 부릴 어린 나이지만 앙드리즈는 “우리는 모든 것을 잃었다. 이러한 삶을 살고 싶지 않다”며 실의에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11개월이 지난 12월13일 유튜브에는 분홍색 교복을 입은 앙드리즈의 모습이 담긴 새로운 동영상이 올라왔다. 다시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 반에서 제가 제일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라고 말하는 그는 한결 밝은 모습이었다. “수학이 좋다”며 “의사가 되고 싶다”고도 말했다. “의사가 돼서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게 이유였다.


지난 13일 세이브더칠드런이 유튜브에 올린 앙드리즈의 모습. 11개월 전 지진 참상을 목도하고 “이런 삶을 살고 싶지 않다”며 절망에 빠졌던 아홉 살 소녀는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되면서 다시 꿈을 꾸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앙드리즈는 난민촌 텐트에서 살고 있었다. 지난 10월29일로 열살이 된 앙드리즈는 “도둑이 많아 텐트에서는 두려움에 떨면서 잠을 자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여름 폭풍 ‘토머스’가 강타했을 때를 돌아보며 “바로 머리 위에서 천둥이 치고 비가 천막 사이로 쏟아졌다”고 설명했다. 튼튼한 새 집에서 사는 것이 현재 그의 바람이다.


규모 7.0의 강진이 닥친 지난 1월 이후 아이티는 가장 가혹한 한 해를 보냈다. 지진으로 22만여명이 목숨을 잃었고 200만여명이 이재민이 됐다. 여름엔 폭풍 토머스를 길거리 천막 속에서 견뎌야 했다. 겨울이 시작될 무렵 콜레라가 발병했다. 지난 11월28일 대통령 선거를 치른 이후에는 르네 프레발 대통령이 이끄는 집권당의 부정선거 의혹이 불거지면서 대규모 폭력시위가 잇따랐다. 선거 결과는 내년에야 발표될 전망이다.


1년 내내 정부의 행정력은 마비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지진과 질병, 빈곤 속에 국가 재건은 먼 얘기고, 혼란만 가중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재민은 130만여명에 달하고 콜레라 감염 사망자는 2400명을 넘어섰다. 965만여명의 인구 가운데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비율이 78%에 달한다.


재난이 닥쳤을 때 가장 취약한 이들은 바로 아이들이다. 전체 인구 가운데 46%가 18세 미만의 청소년·어린이인 아이티의 경우엔 아이들의 피해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여전히 50만여명의 아이가 난민촌에서 생활하고 있고, 난민촌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아이들이 빈민가에서 사회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이티 아이들의 학교 등록률은 50% 미만이다. 현재 22만5000명의 아이가 일터로 내몰리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럼에도 아이티에는 앙드리즈처럼 미래를 꿈꾸는 아이들이 많다. 쌍둥이 자매 에스켄타(13)와 에스켄시아는 각각 산부인과 의사와 간호사가 되는 것이 꿈이다. “서로 도와가며 아픈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 꿈인 자매는 지진으로 아버지를 잃고 집도 잃었다. 지금은 노점상을 하는 어머니와 함께 세 식구가 천막살이를 하고 있다. 이 쌍둥이 자매는 구호단체 월드쉐어가 지원하는 유소년 여자 축구단에서 활동하고 있다.


같은 축구팀 소속 다피네(12)도 지진으로 건축 노무일을 하던 아버지와 형제자매 4명을 한꺼번에 잃었다. 다피네는 엔지니어가 돼 돈을 많이 벌어서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을 꿈꾸고 있다. 축구팀의 막내 베타 어구스트(12)는 강진으로 집이 무너져 형제자매가 모두 숨진 뒤 부모와 함께 텐트에서 생활하고 있다. 어구스트는 “나이팅게일처럼 간호 천사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이 축구팀의 소녀들은 매일 방과후에 모여 공을 차며 ‘남을 돕는 일’을 꿈꾸고 있다.


아이티의 재앙은 끝나지 않은 현실이다. 하지만 현실을 딛고 일어서는 아이들은 더 나은 미래의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 시리즈 끝 >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