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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110213] “추기경께서 ‘나누고 베푸는 삶’을 깨닫게 했죠”

작성일
2011.02.14

“추기경께서 ‘나누고 베푸는 삶’을 깨닫게 했죠”


ㆍ고 김수환 추기경과의 인연 자서전 펴낸 주천기 가톨릭의대 교수



서울성모병원 안(眼)센터 로비 환자대기실에는 ‘눈은 마음의 등불’이란 휘호가 있다. 고 김수환 추기경이 생전에 남긴 유일한 붓글씨다. 이 글귀는 2009년 2월 김 추기경이 선종하면서 기증한 안구의 각막 적출과 이식 수술을 집도한 안센터장 주천기 가톨릭의대 교수(55)의 좌우명이기도 하다.


날마다 로비에서 이 글귀와 마주한다는 주 교수가 오는 16일 김 추기경 선종 2주기를 맞아 추기경과의 특별한 인연을 담은 자서전 <세상을 보여줄게>(amStory 펴냄)를 내놓았다.


지난 9일 서울성모병원 안센터 연구실에서 만난 주 교수는 먼저 “시원시원하게 적힌 추기경님의 휘호를 보고 있노라면 그분의 소탈한 미소와 서글서글한 눈빛이 선하다”며 “그동안은 실력 있는 의사가 되겠다고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김 추기경과의 운명적 만남을 계기로 인생관이 바뀌었다. 앞보다는 옆과 뒤를 보게 됐고, 무엇이든 남과 함께 나눠야 비로소 진정한 행복이라는 평범한 사실도 뒤늦게 깨달았다. 추기경께서 내게 주신 선물”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생전엔 실천하는 사랑으로, 선종 후엔 묵주와 두 안구만을 남긴 채 우리 곁을 떠난 김 추기경의 ‘사랑하며 베푸는 삶’을 지켜보면서 진정한 봉사와 사랑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게 됐다. 어떻게 해야 최고의 의사가 될 수 있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남에게 많이 베푸는 삶을 살 수 있는지를 고민하게 됐다”고 밝혔다.


주 교수는 “이 책은 지금까지의 삶을 반성하고, 내 마음에 등불을 켜주고 떠나신 김 추기경의 뜻에 따라 봉사와 사랑으로 사회를 밝히는 명의가 되겠다는 내 의지와의 언약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책엔 김 추기경의 소탈했던 모습과 선종 후 있었던 안구 기증을 둘러싼 이야기들도 담겼다. 일례로 김 추기경이 선종 후 20분 뒤 수술을 집도하게 됐는데 23년간 수백번이나 반복해온 수술인데도 긴장이 돼 식은땀이 났다고 했다. 막상 적출을 했는데 이식하지 못할까봐 걱정도 많았다고 했다. 다행히 두 사람에게 기증됐고, 둘 다 예후는 좋은 편이라고 전했다. 주 교수는 “당시 안구 기증 신드롬이 불 만큼 많은 사람들이 서약했다. 안구 기증은 사후에 이루어지므로 실질적 공급은 몇 십년 후가 되겠지만 참으로 다행”이라며 못 보던 사람이 이식을 통해 보게 보면 늘 감동을 받는다고 했다.


그는 또 김 추기경이 선종 전에 세상을 밝히는 의사가 되라고 당부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해 11월 특별한 외유길에 올랐다. 저개발국 구호단체인 (사)월드쉐어로부터 아프리카 어린이 실명 예방을 위한 의료봉사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기꺼이 케냐로 떠났다.


의료봉사라곤 전공의 시절 가톨릭계 사회복지시설인 충북 음성군의 꽃동네나 경기 의왕시의 나자로마을에 하루씩, 그리고 10여년 전 베트남에 이틀 다녀온 게 전부였던 주 교수에게 케냐로의 의료봉사활동은 큰 변화이자 시작이었다. 케냐 케리쵸 시에 위치한 케리쵸지역병원에서 백내장으로 시력을 상실해가는 아이 18명의 수술을 집도해 ‘빛’을 선물한 것이다.


지난해 12월엔 제3회 ‘한·미 자랑스러운 의사상’ 수상금 5000만원 전액을 시과학연구소 발전 기금으로 기부했다. 그는 “김 추기경의 각막수술 전이었다면 분명 상금을 사적으로 썼을 것”이라며 “자서전 <세상을 보여줄게>의 인세 역시 빛을 보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모두가 평등하게 빛을 볼 수 있게 전액 기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글 김윤숙·사진 김세구 기자 ys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