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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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을 파는 박사 -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이재성 박사

작성일
2014.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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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을 파는 박사

"돌아가신 분의 이름으로 우물을 파고 싶습니다"

지난 1월 월드쉐어로 한 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자신의 이름, 좋아하는 스타의 이름, 가족의 이름으로 다양하게 파지던 월드쉐어의 우물이었습니다.
하지만 돌아가신 분의 이름을 기리고자 우물을 파겠다는 특별한 사연의 주인공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월드쉐어는 대전에 위치한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으로 향했습니다.

이재성 박사.
그의 이름이었습니다.
키다리 아저씨만큼이나 큰 키의 이재성 박사는 수줍은 미소로 월드쉐어를 맞이해 주었습니다.

이재성 박사가 고인의 이름으로 우물을 파게 된 가장 큰 계기는 한국 원자력 안전기술원의 방사선 안전 본부장 노병환 박사의 안타까운 별세였습니다.
후쿠시마 사고 당시 국민의 '원자력 공포'를 불식시키기 위해 최일선에서 뛰었던 고 노병환 박사는 췌장암으로 약 8개월 가까이 힘겨운 사투를 벌이다 지난 2012년 56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습니다.
부모님을 일찍 여읜 이재성 박사에게 노경환 박사는 아버지이자 선배, 동료 그 이상이었던 존재였습니다. 허망하게 고 노병환 박사를 보낸 뒤 이재성 박사는 처음으로 일에 대한 회의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세상의 풍파에도 큰 탈 없이 무난하게 살아온 인생이었습니다. 생활에 경제적인 불편함도, 일에 대한 불만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고 노병환 박사가 별세한 이후, 그는 일에 의욕을 잃었습니다.
통장에 차곡차곡 쌓이는 월급과 자문료는 이 박사에게 아무런 기쁨이 되지 못했습니다. 이후 과로로 인해 세상과 등을 진 동료 박사들이 하나 둘 늘어갔습니다.
청렴 결백한 동료들이 세상을 떠날 때마다 이재성 박사는 외로움과 회의감을 느꼈습니다.

고인의 이름으로 뜻 깊은 곳에 쓰고 싶다

남들보다 경제적인 여력이 있지만 의미 없는 곳에는 돈을 쓰고 싶지 않았던 이재성 박사는 고민끝에 월드쉐어로 연락을 해왔습니다. 월드쉐어와 만난 이재성 박사는 현재까지 캄보디아에 10개, 미얀마에 2개의 우물을 팠습니다. 현판에 새겨진 이름만 세 명의 고인을 포함해 40여 명이 넘습니다.

월드쉐어와 함께 우물을 판 이후, 이재성 박사의 생활은 조금 변했습니다. 얼마 전까지 회의감 속에서 하던 일들의 피로감이 달라졌습니다. 조금 힘들거나 피곤하더라도 '이 일을 하면 우물 하나가 더 생긴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누군가는 특별하다고 생각 할 수도 있는 위치에서, 평범한 인생을 살아오는 이재성 박사.
단지 청렴결백하고 나누는 인생이야말로, 가장 값어치 있는 것이라는 그의 믿음에,
월드쉐어가 오래도록 함께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