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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구호현장상황

[난민법, 그 후 2년] “난민 되려면, 고국 가면 죽을 수도 있다는 것 증명하래요”  

작성일 : 2015-06-29

[난민법, 그 후 2]“난민 되려면, 고국 가면 죽을 수도 있다는 것 증명하래요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입: 2015-06-19
 
한국에서 난민으로 인정 받는 길
 
여기, 한국을 제2의 고향으로 여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인권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이슬람국가’(IS)의 폭압으로, 반정부 시위 주동자였다는 이유로 고국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지옥의 문을 넘어선 이들에게 한국은 따뜻한 천국이 아니었다. 이웃이 될 수 있는 유일한 조건 난민으로 인정받는 길은 좁기만 했다. 그렇다고 다시 뒤돌아서 지옥의 문을 열 순 없었다. 수년째 고국과 한국의 경계지역에서 떠돌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그들의 이름은 껍데기뿐인 난민, ‘인도적 체류자였다. 경향신문은 NGO ‘피난처의 주선으로 서울 상도동에서 인도적 체류자 신분으로 지내고 있는 난민을 만났다. 피난처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의뢰로 이들의 입국과정과 한국에서의 생활을 조사하고 있다.
 
지난 9일 서울 상도동 국제난민지원 NGO ‘피난처숙소에 머물고 있는 이집트 출신의 한 난민이 생각에 잠겨 있다. 그는 종교적인 이유로 이집트를 탈출했다고 말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두 살 아이와 보호소 거주곧 옮겨야
 
여성 인권단체 지부장으로 활동하다가 무장세력에 납치됐어요. 4개월 동안 감금당한 채 성적 유린을 당했어요. 석방 조건은 하나, 고국을 영원히 떠나라는 것이었어요.”
 
2013년 가을 아프리카에서 온 재스민(40·가명)은 당시 기억을 떠올리며 울음을 터뜨렸다. 대통령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였다는 이유로 정부 무장세력에 납치돼 모든 것을 빼앗겼다고 한다. 재스민은 한국으로 탈출했을 때 임신 7개월이었다. 아직도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는 재스민은 한국에서 자살까지 시도했다아이를 위해 살아야 했다고 말했다.
 
한국에 오자마자 유엔난민기구에 연락했지만 금요일 오후여서 전화를 받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주말 내내 있을 곳이 없었죠. 결국 한국 경찰에게 상황을 설명해 외국인 임시 보호소에 있게 됐어요.”
 
성폭행으로 임신했고, 병원에 가야 한다는 사실을 보호소 측에 알렸지만 진료는 3주 뒤에나 받을 수 있었다.
 
다행히 한 병원의 무료 진료 혜택을 받아 출산을 했어요. 그런데 그 뒤가 문제였어요. 아이를 키우려면 돈을 벌어야 하는데 아이를 맡길 곳이 없는 거예요.”
 
재스민은 곧 거처를 옮겨야 한다. 외국인보호소에서는 최대 6개월까지만 거주할 수 있다. 두 살배기 아이와 살아갈 일이 막막하다. 보호소에서 소개해준 부업으로 벌 수 있는 돈은 고작 하루 3만원 정도다.
 
한국이 그에게 준 신분은 인도적 체류자. 인도적 차원에서 국내 체류를 허가받은 외국인이다. 난민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인종, 종교, 국적, 정치적 박해 등 구체적인 사유가 필요하다. 인도적 체류자는 영구적으로 살 수 있는 난민과 달리 최대 1년에 한 번씩 비자를 갱신해야 한다. 재스민은 난민 신청 1년여 만에 불인정판결을 받았다. 취업은 할 수 있지만 의료보험 혜택 등 난민이 받을 수 있는 기본적인 지원을 받지 못한다. 왜 난민 인정을 못 받았을까.
 
고국으로 돌아가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증명해야 한다고 들었어요. 모든 자료를 빼앗겼는데 어떻게 증명을 할 수 있겠어요.”
 
조국에는 15살 딸을 두고 왔다. “여든이 넘은 이모가 아이를 돌보고 있어요.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면 아이를 한국에 데려올 수 있었을 텐데. 현재는 아이를 다시 만날 방법이 없습니다.”
 
한 달 수입 50만원, 월세 내면 생활 빠듯
 
2013년 시리아 출신 알리(가명·29)는 고국에서 IS 전신 세력에 납치당했다. 2012년 한국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일을 한 게 발단이었다. 알리가 외국에서 돈을 많이 벌어왔다는 소문만 듣고 알리를 감금·폭행한 것이다.
 
알리는 쿠르드족이어서 더 쉽게 타깃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모아놓은 돈을 전부 빼앗기고 풀려났지만 언제 또 납치당할지 불안에 떨어야 했다아무도 모르게 목숨을 잃는 일이 흔히 일어난다고 했다. 쿠르드족은 이란, 이라크, 터키, 시리아, 구소련 등 5개국의 국경지대에 살고 있는 민족이다. ‘단 한 번도 자신들의 국가를 만들어보지 못한 비운의 민족인 이들은 중동지역 곳곳에서 독립운동을 벌이며 박해에 시달리고 있다.
 
 
그는 납치에서 풀려난 20133월 시리아를 떠나 한국에 왔다. 이후 가족들은 IS의 공격을 받아 뿔뿔이 흩어져 난민촌으로 흘러들었다. 알리는 한국에서 난민 신청을 했지만 거절당했다. 대신 인도적 체류자로 분류됐다. 이유는 제대로 듣지 못했다. 한국말도, 영어도 전혀 하지 못한다. 지난해 인도적 체류자 판정을 받은 539명 중 502명이 시리아 출신이다.
 
난민 신청을 해야 되는 줄도 몰랐어요. 친구들이 신청해야 한다고 해서 서류를 냈어요.”
 
6개월에 한 번씩 갱신해야 하는 비자는 그의 삶을 송두리째 옥죄고 있다.
 
그는 현재 강원도의 한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일하는 시간은 길어야 하루 3~4시간이다. 그나마 일 없는 날도 많다. 고용주는 한국말을 전혀 모르는 알리를 부담스러워 한다. 한국어를 배워야 한다는 생각은 절실하지만 어디서, 어떻게 배워야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한 달 수입은 50만원 정도. 월세 10만원을 내고 나면 먹고살기도 빠듯하다.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다. 말도 통하지 않을뿐더러 의료비를 감당할 수 없다. 그럴수록 시리아에 남은 가족이 그립다.
 
다행히 형은 벨기에에서 난민 인정을 받았지만 (시리아에) 남은 가족들은 폭격으로 집을 잃었어요. 가족과 연락이 안된 지 한 달이 넘었어요.”
 
내전이 끝나더라도 맘 편히 쉴 곳 없는 고국 시리아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여권 만료돼 다른 나라로도 못 가
 
에티오피아 출신 토마스(가명·38)2005년 여당이 부정선거로 정권을 거머쥐는 것을 보고 분개했다. 토마스를 비롯해 수많은 시민들이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정부는 시위대에 무차별적으로 발포했다.
 
눈앞에서 100명이 넘는 시민이 목숨을 잃었어요. 모두 무장하지 않은 일반 시민이었죠.”
 
그는 현지에서 기독교인 모임을 이끌었다. 정부는 이 모임을 반정부 네트워크로 지목했다. 토마스는 재판도 받지 않은 채 감옥에 끌려가고 풀려나길 반복해야 했다.
 
2008년 기독교인 초청 행사로 찾은 한국. 이후 8년을 지냈지만 그에게 한국은 아직도 낯선 고향이다.
 
“20083월 한국에서 기독교인을 위한 콘퍼런스가 열렸어요. 초청을 받아 한국에 들어올 때부터 에티오피아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했죠.”
 
안산 외국인지원센터의 도움을 받아 출입국관리소에서 난민 신청을 했다.
 
첫 인터뷰를 잊을 수 없어요. 30분도 안 걸렸거든요. 담당자는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할 만한 공포를 인정하지 못하겠다고 말했죠. 난민이 직접 자신의 공포를 증명하라는 거였어요.”
 
난민 신청 3년 뒤 불허 판결을 받았다. 에티오피아에서 구금당한 사실을 입증하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불가능했다. 자료를 얻기 위해 대사관에 접촉했다가 자칫 본국으로 송환될 수도 있다.
 
한국에서 에티오피아 정부를 반대하는 사이트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에티오피아 정부가 저를 테러리스트 명단에 올렸어요. 경찰이 에티오피아에 있는 집에 들이닥쳤고, 그때 머리를 다친 할머니는 세상을 떠났어요.”
 
난민 불인정 결정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다. 취업비자마저 잃은 상태다.
 
그는 에어컨 부품 공장에서 일하다가 허리를 다쳤다. 수술비가 500만원 넘게 나와 주변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난민 지위를 얻기 위해 마지막 법적 절차를 밟고 있다. 앞날은 밝지 않다. 4월 말 현재 국내 난민 인정 비율은 5% 수준이다. 난민협약국 평균 38%에 훨씬 못 미친다.
 
한국에서 난민 인정이 안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이미 여권도 만료되어서 다른 나라로 갈 수도 없는데.”
 
* 난민
 
인종, 종교 또는 정치적, 사상적 차이로 인한 박해를 피해 외국이나 다른 지방으로 탈출한 사람을 뜻한다. ‘난민의 지위에 관한 국제 협약은 난민에게는 의료·교육 등 개인적 기본권을 비롯한 합법적인 외국인 체류자에게 주어지는 것과 똑같은 권리와 지원이 제공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행법은 박해받을 가능성에 대한 충분한 근거를 요구하고 있다.
 
* 인도적 체류자
 
난민 사유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고문 등의 비인도적인 처우나 처벌 또는 그 밖의 상황으로 생명이나 신체의 자유 등을 현저히 침해당할 수 있다고 인정해 체류를 허가한 외국인이다. 본인이 원하지 않을 경우 강제 출국하지 않지만 의료·교육 등의 혜택을 따로 주지 않는다.

출처 : 경향신문